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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는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 어느 것이 빠져도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이 중에서 영토가 최우선이다. 영토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민족이든 생존을 위한 1차적인 자산이다.

독도가 우리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다케시마(竹島)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 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시비를 걸고 있다.

어떻게 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남의 땅을 가지고 저렇게까지 우길수 있을까?

그런데 일본이 독도를 차지하게 되면 한국은 동해바다 전체를 잃게 되고, 동쪽이 막히면서 국력이 매우 쇠퇴해져 일본이나 중국에 편입되거나 속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일본이 독도를 장악하게 되면 독도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연결돼 일본의 해양을 통한 정치·경제·군사적 이익은 크게 늘어날 것이고, 미국과 연합한 일본이 더욱 커진 국력으로 중국·러시아와 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 동해와 동아시아의 질서는 매우 긴장된 상태로 바뀐다는 말이다.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명분을 만들어 우리의 영토를 침략해왔으며, 지금도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일본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로 이미 국제적으로 독도가 한·일간의 영토분쟁의 대상지역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명분은 축적되어 있는 것이고,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최악의 경우인 일본의 군사적 침략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렇게 중차대하고 엄중한 해양영토 침탈의 현장에서 자기의 목숨을 걸거나, 일생을 바쳐서 독도를 지켜온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1500년전, 신라 지증왕의 명을 받아 우산국을 신라영토로 만든 ‘이사부’로부터 시작하여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수많은 이유를 댈 수 있게끔 만든 인물인 ‘안용복’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안용복’은 조선시대 공도정책으로 바다나 섬에 대해 하찮게 여겼던 시대에 힘없고 초라한 민초신분으로 1693년과 1697년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일본으로부터 자국 국민들의 울릉도, 독도 출입을 금지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이로 인해 사실상, 1905년 이전까지 조선과 일본 간의 분쟁을 그치게 했던 영웅이다.

이후 한국전쟁 직후, 울릉도민 ‘홍순칠’은 울릉도 청년 45명으로,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1956년까지 독도에 머무르며 일본의 독도침탈에 맞서 몸으로 독도를 수호하고, 동도 바위벽에 ‘한국령(韓國領)’을 새겨 넣은 ‘열혈남아’였다.

‘최종덕’은 1963년에 독도에 들어와 1965년부터 움막집을 짓고 어부로 살다가 1981년에 독도 최초 주민으로 전입하여 정식으로 독도 주민이 되었고, 1987년 사망할 때까지 독도에서 살았다. ‘김성도’, ‘김신열’씨 부부는 ‘최종덕’씨를 도와 해산물을 채취하며 독도에 오가다가 최종덕 선생 사망이후,1991년 11월에 주소지를 독도로 옮겨 정식 주민이 되어 ‘서도’에서 살아 왔는데, ‘김성도’씨는 지난 2018년 10월에 사망 하였다.

독도를 지켜온 인물열전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한사람으로는 일본을 30년동안 수십차례 왕래하면서 수집한 2200여점의 ‘일본이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하는 사료적 가치가 큰 독도관련자료’ 와 동해명칭과 관련된 고증자료를 모두 기증하고, 정부의 지원도 거의 없는 가운데 울릉도에 들어와 초대 독도박물관 관장을 지낸 경기 화성 출신의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이 있다.

이밖에도 발해 해상항로 뗏목탐사대 선장으로 탐사도중 전복사고로 숨진 ‘이덕영’씨, 일제 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독도에서 물질했던 해녀들과 어부들이 있다.

현재 진행형으로는, 독도경비대원들, 독도관리사무소 직원들, KIOST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원들, 그리고 독도 수호를 응원하고 지원하는 수많은 단체와 국민들이 바로 독도를 지켜왔고, 독도를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고 애국자들이다.

국제법상 독도는 무인도이다. 그런데 ‘무인도는 가장 가까운 나라의 영토’라고 규정되어 있다. 실제로 독도에서 최단거리의 유인도는 울릉도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 ㎞ 떨어진 곳에 독도가 있다. 가장 가까운 육지인 경북 울진군 죽변까지의 거리는 217㎞ 이다. 그래서 울릉도에서는 날씨만 좋으면 해발 130 m 지점에서도 맨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다.

반면에 독도와 가장 가깝다는 일본 땅은 157.5 ㎞나 떨어진 오끼군도(시마네현)이다. 일본의 오끼군도에서는 아무리 시야가 좋아도 육안으로는 독도를 관찰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옛 문헌에서 울릉도는 우산국, 우릉도, 무릉도, 울릉도로 지칭되었고, 독도는 우산도, 천산도, 자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독도 등으로 불려왔다. 대부분의 옛 문헌에서는 독도를 울릉도와 함께 언급했다. 물론 우리나라 뿐 만이 아니라 일본의 옛 문헌과 지도에도 독도는 조선 땅임이 명시되어 있다.

옛날에 일본은 울릉도를 기죽도, 죽도라고 불렀고, 독도는 송도, 죽도, 우산도라고 일컬었으며, 독도에 관한 일본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67년에 은주지방의 ‘사이토호센’이라는 관리가 편찬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로서 일본의 서북 경계인 은주 너머의 두 섬(울릉도와 독도)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독도는 동쪽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과 같다. 독도가 한국의 파수꾼이면, 동쪽 바다인 동해가 한국의 바다가 되는 것이고, 독도가 일본의 파수꾼이면, 동쪽 바다가 일본 바다가 되는 것이다. 동쪽 바다가 일본 바다로 바뀌면 대한민국은 동해를 전부 잃게 된다. 동해를 잃고 동쪽이 막히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대한민국은 더는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오늘날 남한이나 북한이나 재외동포들이 모두 독도를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바로 독도가 겪어온 수난의 역사 때문이다. 그런 수난의 역사가 바로 우리 민족의 역정이며, 개개인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독도라는 말만 들어도 우리 민족 모두의 가슴이 저며 온다. 독도를 온전한 한국 땅으로 만드는 과정은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 남과 북,그리고 재외동포들이 모든 증오와 이기심을 넘어 하나의 민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독도를 지켜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임장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전 부원장

출처 : 뉴스비전e(http://www.nvp.co.kr)

 

독도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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